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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조선시대 문학에 대해

by zero-mind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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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문학에 대해

조선시대(1392년~1910년)는 한반도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문학 장르와 작품들이 발전하고 창작되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대의 문학은 주로 한글로 쓰였으며, 정치·사회·윤리·사랑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유교와 신분제 사회 구조의 영향을 받아 문학은 광범위한 장르와 주제를 포함했습니다.

조선 전기는 귀족 적이며 절대왕권적인 복잡한 성격을 지닙니다. 유교적인 관료체제의 기반이 확립되면서 성리학이 정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당쟁으로 인해 선비들의 분파가 일어나고 밀려나게 된 선비들은 산림에 숨어 한가롭게 세월을 보내면서 여러 다양한 문학이 발전하게 됩니다.

초기에 훈민정음이 반포 됨에 따라 한글로 지어진 문학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대에는 특히 가사와 시조가 발달하여 민족 문학으로서의 장르를 확고히 했습니다. 처음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전대에 없던 악장이라는 새로운 시가의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고려 시대의 별곡·가사·시조 등이 이 시대에 계승 발전되어 시가문학이 무르익는 시기를 이루었습니다. 조선시대 문학의 주요 특징과 대표적인 작품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조선 전기 문학

  • 악장 : 악장은 조선 건국과 더불어 등장된 궁중 시가입니다. 음악이 위주였으며 그 음곡에 얹어 부르던 작품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악제가 발달하여 맹사성과 악성의 칭호를 듣는 박연을 배출하였으며 수많은 가사 작품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곡으로 여민악곡(與民樂曲)에 얹어 부르던 용비어천가가 있으며, 이는 또한 조선 악장의 대표 작품이기도 합니다.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의 실용 가능성을 시험하여 보기 위하여 정인지 등에게 명하여 짓게 한 것인데 양장 형식(兩章形式)으로 125장의 긴 작품이며 조선 건국 찬가라 할 수 있습니다. 한글로 지어진 ‘월인천강지곡’이 있는데 형식은 용비어천가와 같고, 내용은 석가모니를 찬양하는 찬불가입니다. 이 밖에 악장으로는 ‘문덕곡’, ‘무공곡’, ‘근천정’, ‘수명명’ 등이 있으나 그것들은 궁중에 국한되어 있었고, 거의 대부분이 과장된 찬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시조 : 조선 전기의 시조문학은 고려 중엽부터 형성되었던 한국 고유의 정형시를 그대로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후 더욱 활발하게 창작되어 한시를 대신하는 시가로 발전하였습니다. 시조는 단형시(短型詩)로서 조선 초기의 고려 유신인 길재와 원천석의 회고 가로 시작되어 세조 때 단종의 충신들인 성삼문, 박팽년, 이개, 유성원, 유응부, 하위지 등의 작품으로 이어졌고, 성종 초기의 맹사성의 강호사 시가로서 발전의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명종 때에는 송순, 황진이 등의 뛰어난 작가가 나와 시조문학의 진가를 발휘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2대 성리학자인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가 있고, 정철의 시조에 이르러 시조문학은 정점에 이르렀으며 다음의  박인로와  윤선도에서 만개하게 됩니다.
  • 가사 : 조선조 전기의 가사 문학도 자유형의 시가인데 역시 훈민정음의 창제와 더불어 크게 발전되었습니다. 성종 초에 정극인이 지은 상춘곡은 형식과 내용이 잘 갖추어진 초기 대표 가사 작품입니다. 뒤를 이어 김구의 화전별곡, 주세붕의 태평곡, 조위의 만분가, 송순의 면앙정가, 차천로의 강촌별곡,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등이 있습니다. 백광홍의 관서별곡(關西別曲)은 정철의 관동별곡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정격 가사(正格歌辭)들이 후기에 가서는 장편 가사(長篇歌辭)로 옮겨져 쇠퇴하게 됩니다.
  • 한문학 : 조선 전기의 한문학은 유교를 국교로 정한 시대적인 상황하에서 쓰였으며 서거정의 동문선, 성현의 용재총화, 김종직의 점필재 집, 조광조의 정암 집(靜庵集) 등이 있습니다.
  • 조선 전기는 주로 악장과 시조와 가사인 시가문학이 성장 발달했으며. 특히 시조문학의 주제를 보면 자연·한거 생활(閑居生活)이 대부분인데 정한(情恨)과 비분 개세(悲憤慨世)의 작품도 많이 있습니다.

3. 조선 후기 문학

조선 후기의 문학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1894년 갑오경장에 이르는 약 300년간의 문학을 말합니다. 선조 25년(1592)에 시작되어 7년 동안 계속된 임진왜란으로 인해 백성들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임진왜란이 끝나고 인조 때 또다시 병자호란이 일어나 나라는 피폐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는 양반들의 무력함이 폭로되었고 또한 자기 계급 내에서도 비판의식이 대두되었습니다. 평민들의 권리가 신장되며 서서히 상업 경제가 일어났고, 종래의 공리공론만 일삼던 도학적 학풍에서 벗어나 사회를 개량하고 국민의 복리 후생을 도모하려는 새로운 학풍이 대두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은 청나라를 통한 서양 문물의 전래와 함께 대두되었으며 이수광, 한백겸, 유형원, 홍만선, 이익 등에 이르러 실학의 체계가 본격화되었고, 이러한 학풍은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 실학자에게 계승 발전되었습니다. 서학인 천주교의 또한 전해지면서 봉건사회의 오랜 미몽(迷夢)을 깨우치는 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와 자각 속에서 박지원의 현실 비판의 소설은 특수 계급인 양반 관료의 완롱물(玩弄物)이 아니라 학으로서의 지표(指標)가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차츰 장편적인 가사나 소설이 출현하였고, 서정적인 유배문학에서 산문정신의 문학적 표현인 소설의 발달을 촉진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예찬이나 은둔적인 생활은 근대적인 산문으로 대치되었으며, 문학의 폭은 그만큼 확대되었습니다. 중인 계급에 의해 사설시조가 쓰였으며, 또 문학작품이 판소리와 잡가, 소설과 가면극의 형태로 나타난 것도 이 시대 문학의 주요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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